2005년 11월 18일 (금) 11:44 경향신문 | |||||||||
“나는 72살 고3 수험생입니다” | |||||||||
1953년 일성고등공민학교로 시작한 일성여중·고등학교는 가정형편 등으로 배움의 때를 놓친 주부들의 터전. 지난 2000년 학력인정 학교로 등록돼 3만5천여 명의 주부학생들이 거쳐 갔다. 올해로 72살인 장윤정 할머니는 3학년1반의 최고령자다. 수능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묻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손주뻘 되는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시험 볼 생각을 하면 공연히 겸연쩍어진다는 것. 자신이야 얼굴만 붉어지면 되지만 행여 어린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 걱정이다. 포기할 수는 없다.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팽개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 대학진학을 위해서도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니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일흔 넘은 노인이 무슨 수능시험이냐고, 노망 든 거 아니냐고 수군대면 어쩌나 몰라. 그래도 어떻게 해. 학교 다니는 게 행복한데. 새로운 걸 배우고 또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게 이렇게 좋은데.” 할머니는 ‘여자가 공부하면 기가 세진다’는 아버지의 불호령 때문에 초등학교를 그만뒀다. 못 배운 한은 60여년을 고스란히 따라 다녔다. 딸아이의 하얀 교복칼라를 다림질할 때마다 눈물·콧물이 흘렀을 정도다. 못 배웠다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일평생을 움츠려 살았다. 일흔을 코앞에 두고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입학 자격을 따려고 본 검정고시까지 합치면 5년 세월을 꼬박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관절염에 백내장까지 앓으면서 지각 한번, 결석 한번 하지 않았다. 일산에서 마포까지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도 할머니에겐 즐거운 나들이길이다. -주훈 : 수업준비를 철저히 하자- 한문시간. 할머니는 중용 첫 구절을 받아 적는데 정신이 없다. 한자 한 획 한 획에 정성을 다한다. 활짝 펼쳐진 교과서와 공책. 그 위에는 안경 2개와 돋보기 1개가 놓여있다. 칠판을 볼 때는 원시안경을, 공책을 볼 때는 근시안경을 써야 한다. 혹시 몰라 돋보기까지 챙겨뒀다. 뿐이랴. 커다란 필통에는 가지각색의 펜이 들어있고 연필은 하나같이 매끄럽게 깎여 있다.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주훈을 이보다 더 잘 지키는 학생이 어디 있을까. “성적? 그런 건 묻지 마. 나이가 많으니까 자꾸 잊어버려. 금방 가르쳐줘도 금방 까먹고. 뭘 외워도 하루 지나면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데 성적이 좋을 리 있겠어?” 수능에 잘 나오는 부분이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교실은 한순간 부산해진다. 빨간 펜으로 차분히 밑줄을 긋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디? 어디?”를 연발하는 학생도 있다. 12월1일부터 시작되는 기말고사의 시험범위가 발표되자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 ‘시험을 조금 미루면 안 되냐’는 등 애교 섞인 투정도 부려본다. 45분 수업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쉬는 시간 10분은 더 짧다. 수행평가 노트 제출부터 친구의 수시모집 합격소식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오고간다. 좋은 소식엔 제 일처럼 기뻐하며 소소한 일상까지 주고받는다. 책상에 쏟아지는 간식꾸러미도 한 보따리다. 사탕부터 호박엿, 강냉이, 가래떡, 말린 고구마까지 모두 집에서 싸온 것들이다. 기자에게도 “전학 온 학생이냐”며 스스럼없이 간식을 건넨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핀다.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던 사춘기 시절.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알면 쓰고, 모르면 잘 찍어라”- “‘왕언니’는 교장선생님이 아버지보다 더 좋다고 했을 정도예요.” “‘왕언니’는 공부하다 죽으면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인데 말 다 했지 뭐~” “50 먹은 나도 힘든데 ‘왕언니’ 진도 따라가는 거 보면 진짜 노력파라니까.” 같은 반 학생들은 장 할머니를 ‘왕언니’라고 부른다. 최고령인 까닭도 있지만 배울 게 많아 ‘인기 짱’이라고 입을 모은다. 40살 차이가 나도 이 곳에서는 언니-아우. 몇 십 년의 나이차쯤이야 동창인데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할머니는 문화교양학을 전공하려 한다. 실용음악부터 문예창작, 사회복지학 등 같은 반 학생들의 꿈도 다양하다. 졸업 후에는 정기적으로 동창회도 가질 계획이라며 자랑이다. 수능을 앞둔 학생들에게 전하는 교장선생님의 당부는 예상외로 간단하다. “알면 쓰고, 모르면 잘 찍으라”는 것. 대신 “공부는 한도 끝도 없이 해야 한다. 배운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린 학생들처럼 수능이 대학입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야. 그래도 못 배운 한을 푸니까 이젠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열심히 한번 해봐야지.” 할머니는 이 날도 ‘오늘 배운 내용을 훑어보고 가겠다’며 몇몇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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